[책 요약] 생각과 계획은 내가 하지만 결과는 세상이 만든다., 나는 나의 스무 살을 가장 존중한다(3편)
부자가 되기 위한 첫번째 기본기는 독서이다.
운동은 상쾌한 몸과 유쾌한 마음, 명쾌한 눈을 지니기 위해서다.
생각과 계획은 내가 하지만, 결과는 세상이 만든다.
우리는 단지 충실히 시간을 보내면 된다!
3. 매일 조금씩 나를 성장시키는 습관
부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기본기, 독서에 대해 알아보자.
책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 되어야 한다. 책은 다 읽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책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도구다. 독서는 종이에 박힌 활자를 읽는 게 아니라, 그 활자가 내 언어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작가의 생각을 해체하고, 나의 생각을 해체하여 새롭게 편집하는 시간이다. 그 과정에서 내 생각이 바뀌고 나의 말이 달라지게 된다. 나만의 새로운 언어, 메터드(metord, meta와 word를 합친 말)가 생기기 때문이다. 나의 메터드는 내 세상과 주변을 변하게 한다. 세상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고, 내가 쓰는 언어에 따라 나의 세상은 바뀌기 때문이다. 언어로 채워진 세상, 그 세상 속에서 나도 언어로 물들고 있다.
평소 어떤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가? 그 단어가 당신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그것을 풍성하게 채우고, 변화시키는 힘이 바로 독서다. 풍요의 말과 결핍의 언어는 이 차이에서 비롯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가 독서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블로그가 없다면 지금 하나 만들자.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꼭 누구를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지식의 유희는 자신에게 상당한 즐거움을 준다.
지식과 지혜의 성장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다. 그 이상의 가치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언어의 풍요로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풍요 속에서 세상은 다르게 펼쳐진다. 세상은 언어의 집이고, 그 집이 풍요로 채워질 때 당신은 부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책은 다가가고, 펼치고, 쓰고, 저장하면서 읽어야 한다. 책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다. 책은 발로 다가가, 손으로 펼치고, 눈동자를 움직이고, 펜으로 쓰고, 노트북에 입력하고, 카톡으로 감동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책은 몸으로 읽는 것이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삶은 고통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고 말했다. 누구나 삶의 고통과 괴로움이 생긴다. 그 고통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그 아픔이 빨리 잠잠해지기를 바란다. 괴로움이 멈추고, 마음의 동요가 사라지길 바란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고통이 잠잠해지면 우리는 이내 지루해한다. 그 잠잠함이 주는 지루함이 싫어서다. 권태로운 하루가 지겹게 느껴진다. 우리 삶의 모습이다. 고통과 권태가 반복되는 일상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상황과 사건이 아니다. 잘 살펴보면 눈앞의 사건보다 그 사건을 판단하는 내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한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생각들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그리고 부정적 느낌과 감정을 동반한다.
운동을 하자!
그때 현실을 허용하는 능력이 생긴다. 나를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일들도 한번 경험해 볼 여유가 생긴다. 명쾌한 눈을 지닐 때, 현실을 허용할 수 있다. 운동이 가지는 효과다. 운동은 근력 키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상쾌한 몸과 유쾌한 마음, 명쾌한 눈을 지니기 위해서다.
성공하는 삶을 살기 위한 기본기가 있다. 독서, 운동, 명상이다. 이 3가지는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을 한다고 반드시 삶의 목표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인생을 펼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를 보여주는 많은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제는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을 매일 사람은 흔치 않다. 나는 매일 ‘1시간 독서, 1시간 운동, 3분 명상’을 하고 있다. 20년 넘은 나의 습관이다.
호흡은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숨은 내가 쉬는 게 아니라 쉬어지는 것이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수호천사가 나를 위해 숨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바로 진정한 나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진정한 나, ‘참나’와의 만남이다.
이제는 하루의 작은 성취에 즐거워하고, 세상에 나를 맡긴 채 가볍게 살아간다. 목표 없이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미래가 지금보다 훨씬 좋을 거라는 앎을 지닌 채, 누구보다 즐겁게 살고 있다. ‘꼭 되어야 해’, ‘이건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해’라는 잡착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을 채워간다. 오늘이 미래로 이어지는 과정임을 알면 즐겁게 그 삶을 채울 수 있다. 오늘이 즐거우면 미래도 즐겁지만, 오늘 열심히 살면 열심히 사는 미래가 펼쳐질 뿐이다. 생각과 계획은 내가 하지만, 결과는 세상이 만들고 있다. 그 세상을 믿고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보내보자.
우리 삶은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시간의 본질은 ‘변화’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일상은 정체를 의미하며, 정체된 삶은 도태를 초래한다. 결국, 일상이 변하고 삶이 변할 때 비로소 성장하게 된다. 성장하는 삶, 그 시작은 일상의 사소한 변화다.
내 삶의 작은 변화가 일상이 될 때 그 변화는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 지속되는 관성이 나의 무의식을 파고든다. 무의식에 각인된 행동은 어느새 내 생활이 되고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 습관의 원리다. 움직이지 않는 물체는 그대로 있으려 한다. 그러나 일단 구르기 시작하면 계속 구르려 한다. 그 ‘구름’이 우리를 ‘다름’으로 이끈다.
말을 잘 하고 싶다면
소통은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고, 거기에 거창한 포장지는 필요 없었다. 그리고 메시지에 미소가 동반될 때, 이야기는 쉽고 편안하게 전달되었다. 미소와 전달력, 그것이 스피치의 핵심이었다.
‘당신의 미소가 세상을 바꿀 수 있게 하라. 하지만 세상이 당신의 미소를 바꾸게는 내버려 두지 마라.’
– 중국의 속담
미소와 함께 전해지는 말은 마음에 자리 잡는다. 긍정의 감정을 가질 때 쉽게 허용하는 마음이 생긴다. 반대로 부정적 감정에 휩싸일 때 그 부정성과 하나가 되어 버린다.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이 가지 않는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극도의 슬픔이 나를 감쌀 때, 우리는 귀를 닫고 마음의 문을 잠그게 된다. 그 어떤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 슬플 때는 귀가 없어진다.
말은 생각에서 시작하고, 생각이 정돈되었을 때 정리된 말을 하게 된다. 말이 정리되면 전달력이 좋아지고,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결국 ‘생각 정리’가 전달력의 핵심이다.
정보에 나의 스토리가 담길 때 비로소 지식이 된다.
정보가 지식이 되면 설명이 쉬워진다. 나의 이야기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연결된 지식은 쉽게 휘발되지 않는다. 우리 뇌의 해마를 거쳐 장기 기억 공간인 대뇌 피질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상황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 형태로 나타난다. 정보는 날아가지만, 지식은 쌓여간다.
나도 모르는 일상의 변화, 습관이 생기게 된다. 습관은 지식을 경험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이때 나의 지식은 머리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몸에 기억된다. 지식이 몸에 기억될 때, 지식은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기록으로 남겨진 몸은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 행동으로 지식을 펼쳐낸다. 그게 달변가의 시작이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자신 있게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다. 몸으로 정리된 생각이 머리에 기억된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하는 일상에 대해서는 눈 감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지식과 정보는 취득한 것이다. 그 취득한 것들이 몸으로 체득될 때 무의식에 변화가 생긴다. 내 마음에 납득이 되는 것이다. 지식의 경험화는 지혜를 거쳐 무의식의 관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취득은 체득을 통해 납득이 된다.
달변가는 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달변가는 생각이 정리된 사람이고, 자신의 삶을 나의 키워드로 정리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간결해서 듣기가 편하다. 정리된 키워드로 정돈된 말을 하기 때문이다.
일상을 글감 삼아 습관을 요약하는 연습을 해보자. 습관을 키워드화하여 자신을 관찰하면 무의미하게 하루가 지나가지 않는다. 소모적 삶이 아닌 축적하는 삶을 만들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인생은 풍성해진다. 쌓고, 경험하고, 정리하라.
‘당신이 자주 가는 곳, 만나는 인간, 읽는 책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
1749년에 태어난 괴테의 이야기다. 그는 270년 전에 태어났다. 그런데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고, 메시지가 유효하다.
우리는 3간(시간, 공간, 인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독서 시간, 단골 공간 그리고 친구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 그 3간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한다.
주변이 좋은 사람으로 채워질 때, 그 관계는 나의 운이 되어 나를 행동하게 한다. 하지만 나에게 불만을 표시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가득할 때, 나의 내면은 그들의 결핍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마음이 결핍되면 우리는 행동하지 않는다. 불안의 생각만 반복할 뿐이다.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몸은 더 무거워진다. 더 이상 나아가지 않게 된다. 행동하지 않기에 삶의 변화는 없다. 인생의 운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 운명에 묶여 버린다.
“토 나와, 이제 그만해.”
‘토 나와’를 발음 그대로 영어로 만들면 TONAWA(Talk Only No Action With Appraisal)다. 그들의 특징은 행동하지 않고, 평가하고 말만 한다는 점이다. 뭔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당신을 평가하지만, 사실 조언을 들어야 할 사람은 그들이다. 거대한 통찰을 가진 것처럼 충고하지만 사실 그들의 논리는 나약하다. 통찰은 행동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지, 생각을 통해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